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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펌글] 어느 50代의 회상.

法光 2008. 2. 10. 00:04
어느 50대의 회상
글쓴이: 法光 조회수 : 008.02.09 11:29 http://cafe.daum.net/qjqrhkd/Aj9m/52주소 복사

 

                                   <전남 담양 삼지천마을 돌담길>

 

 

 

우리는 우리를 이렇게 부른다.

동무들과 학교 가는 길엔 아직 개울물이 흐르고 , 강가에서는 민물새우와 송사리떼가

검정 고무신으로 퍼올려 주기를 유혹하고, 학교 급식빵을 얻어가는 고아원 패거리들이

가장 싸움을 잘 하는 이유를 몰랐던 그때 어린 시절을 보냈던 우리는  이름 없는 세대였다.



생일 때나 되어야  도시락에 계란 하나 묻어서 몰래 숨어서 먹고  소풍 가던 날  책보재기

 

속에 계란 3개,  사탕 1봉지 중 반 봉지는  집에서 기다리는 동생을 위해 꼭 남겨와야 하는 걸

이미 알았던 그 시절에도 우리는  이름 없는 세대였다.



일본 식민지 시절을 그리워 하는 사람들과  6.25를 겪은 어른들이  너희처럼 행복한 세대가

 

없다고  저녁 밥상머리에서 빼놓지 않고 애기할 때마다   일찍 태어나 그 시절을 같이 겪지 못한

우리의 부끄러움과 행복 사이에서  말 없이 고개만 주억거렸고  누런 공책에 "바둑아 이리 와

 

이리 오너라 나하고 놀자"를   침 묻힌 몽당연필로 쓰다가  단칸방에서 부모님과 같이 잠들

 

때에도 우리는  역시 이름 없는 세대였다.


배우기 시작한 때부터 외운 국민교육헌장,  대통령은 당연히 박정희 혼자인 줄 알았으며

무슨 이유든  나라일에 반대하는 사람은 빨갱이라고 배웠으며  학교 골마루에서 고무공

 

하나로 30명이 뛰어 놀던 그 시절에도  우리는 이름 없는 세대였다.



검은 교복에 빡빡머리, 선배들이 지키는 지옥문보다 무서운 교문에서  매일 규율부원에게

 

맞는 친구들을 보며  나의 다행스런 하루를 스스로 대견해 했고,  성적이 떨어지면  손바닥을

 

담임 선생님께 맡기고  걸상을 들고 벌서는 일을 당연하게 생각하였으며  이름 없는 호떡집,

 

분식집에서 여학생과 놀다  학생지도 선생님께 잡혀 정학을 당하거나  교무실에서나 화장실

 

에서 벌 청소를 할 때면  연애박사란 글을 등에 달고   지나가던 선생님들에게 머리를 한 대씩

 

쥐어 박힐 때도,  시간이 지나면 그게 무용담이 되던 그때도, 우리는 이름 없는 세대였다.



4.19 세대의 변절이니  유정회 통일주체 국민회의 대의원들이 자동 거수기니, 애국자이니,

말들이 분분하고  뇌물사건 때마다 빠지지 않고  간첩들이 잡히던 시절에도  말 한 마디

 

잘 못해 어디론가 잡혀갔다 와서  고문으로 병신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술집에 모여 숨을

 

죽이고 들었으며,  책 한 권으로 폐인이 되어 버린 선배님의 아픔을  가슴으로만 안아야 했던

 

우리는  이름 없는 세대였다.




빛깔 좋은 유신군대에서,  대학을 다니다 왔다는 이유만으로 복날 개맞듯 얻어맞고  탈영을

 

꿈꾸다가도  부모님 얼굴 떠올리면서 참았고,  80년 그 어두운 시절, 데모대 진압에 이리저리

 

내몰리면  어쩔 수 없이 두 편으로 나뉘어  진압군이자 피해자였던 그때에도  우리는 이름 없는

 

세대였다.



복학한 뒤에는  시험 때, 후배는 만인의 컨닝 페이퍼인 책상을 이용했지만   밤새워 만든

 

컨닝페이퍼를  주머니에서만 만지작거리며 망설이던 그때에도   우리는 이름 없는 세대였다.



일제세대, 6.25 세대, 4.19 세대, 5.18세대,  모래시계 세대,  자기 주장이 강하던 신 세대

모두들 이름을 가졌던 시대에도  가끔씩 미국에서 건너온 베이비 붐 세대  혹은 6.29 넥타이

 

부대라 잠시 불렸던 시대에도 우리는, 자신의 정확한 이름을 가지지못했던  불임의 세대였다.



선배 세대들이 꼭 말아쥔 보따리에서  구걸하듯 모아서 겨우 일을 배우고,  혹시 꾸지람

 

한마디에 다른 회사로 갈까 말까 망설이고, 후배들에게 잘 보이려고   억지로 요즘 노래 부르는

 

늙은 세대들.




아직은 젊다는 자위와  후배 세대들을 대변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임금 인상, 처우 개선 등

 

맡아서 주장하는 세대,  단지 과장, 차장, 부장, 이사.상무.전무등등..   조직의 간부란 이유로

조직을 위해 조직을 떠나야 하는 세대들  팀장이란 이상한 이름이 생겨서  윗사람인지, 아랫

 

사람인지 알지도 못하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



노조원 신분이 아니어서  젊은 노조원들이  생존권 사수를 외치며 드러누운 정문을 피해

쪽문으로 회사를 떠나는 세대들  IMF에 제일 먼저 수몰되는 세대,  미혹의 세대,  오래 전부터

 

품어온 불길한 예감처럼  맥없이 무너지는 세대.



이제 우리는 우리를 우리만의 이름으로 부른다. 선배들처럼 힘있고 멋지게 살려고 발버둥 치다가

어느 날 자리가 불안하여 돌아보니  늙은 부모님 모셔야 하고  아이들은 어리고  다른 길은 잘

 

보이지 않고  벌어 놓은 것은 한겨울 지내기도 빠듯하고   은퇴하기에는 아직은 젊은것 같고

도전하기에는 늙은 사람들....



회사에서 이야기하면 말 잘 듣고   암시만 주면 알아서 짐을 꾸리는 세대.  주산의 마지막 세대

컴맹의 제 1세대,  부모님에게 무조건 순종했던 마지막 세대이자   아이들을 독재자로 모시는

 

첫 세대.



부모를 제대로 모시지 못해  처와 부모 사이에서 방황하기도 하고  아이들과 놀아 주지 못하는 걸

 

미안해 하는 세대.  이제 우리는 우리를   퇴출세대라 부른다.



50대는 이미 건넜고,  3-40대는 새로운 다리가 놓이길 기다리는  이 시대의 위태로운 다리 위해서

바둑돌의 사석이 되지 않기 위해 기를 쓰다가  늦은 밤   팔지 못해 애태우는 어느 부부의 붕어빵을

 

사들고 와서  아이들 앞에 내놓았다가 아무도 먹지 않을 때  밤늦은 책상머리에서   혼자 우물거리며

 

먹는 우리들.



모두들 이름을 가지고 우리를 이야기 할때,  이름 없는 세대였다가,  이제야 당당히 그들만의

 

이름을 가진 기막힌 세대,  바로 이 땅의 50대!



고속 성장의 막차에 올라 탔다가  이름 모르는 간이역에 버려진 세대,

이제 우리가 우리를 퇴출이라고 부르는 세대.



진정 우리는,  이렇게 불림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관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것일까?

이 땅의 4~50대 들이여,  혹여 다시 일어날 용기와 희망을

스스로 저버리지고 있지는 않는가?

 



                          <'어느 50대의 회상' 중에서>

출처 : 법광상인(法光常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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