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종점에서 남는 것/ 法頂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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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종점에서 남는 것
눈이 내린다. 오랜만이다. 아직은 이 산중에 눈다운 눈이 내리지 않았다. 내가 산을 비운 사이 두어 차례 눈이
다녀가면서 응달에 그 자취를 남기긴 했지만 많은 양은 아니다. 난롯가에 앉아 모처럼 차를 마셨다.
초겨울 들어 내 몸에 세월의 무게를 느끼면서 하루도 거르지 않았던 차를 거의 마시지 못했다.
뭔가 속이 채워지지 않은 채 뻑뻑했고 내 속뜰에 겨울 숲이 들어선 느낌이었다. 오늘 마신 차로 인해 그 숲에 얼마쯤 물기가 감돌았다 . 차의 향기와 맛 속에 맑은 평안이 깃들어 있었다.
한 동안 표정을 잃은 채 다소곳이 놓여 있던 다기에 생기가 도는 것을 보고 그동안 돌보지 못했음을 미안해했다.
우리가 살 만큼 살다가삶의 종점에 다다랐을 때 남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요즘 가끔 생각나는 과제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원천적으로 내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때 맡아 가지고 있는 것일 뿐이다.
재물이 됐건 명예가 됐건 그것은 본질 적으로 내 차지일 수 없다. 내가 그곳에 잠시 머무는 동안 그림자처럼 따르는 부수적인 것들이다.
진정으로 내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그곳을 떠난 뒤에도 그 전과 다름없이 그 곳에 남아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니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은 내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내가 평소 이웃에게 나눈 친절과 따뜻한 마음씨로 쌓아올린 덕행만이
시간과 장소의 벽을 넘어 오래도록 나를 이룰 것이다. 따라서 이웃에게 베푼 것만이 진정으로 내 것이 될 수 있다.
옛말에 '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고 자신의 업만 따를 뿐이다'라는 뜻이 여기에 있다.
-법정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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