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꺼리낌없는 무애(無碍)의 미 미륵반가유상
아름다움에는 또 거리낌 없는 무애(無碍) 의 미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미륵반가사유상' 과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은 똑같이 생각하는 모습입니다.
그렇지만 둘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미륵반가사유상'에는 고요와 평안과 잔잔한 미소가 스며 있습니다.
그래서 그 앞에 서면 저절로 고요와 평안과 잔잔한 미소가 우리안에 스며듭니다.
그러나 로댕의 '생각하는사람'에는그러한 고요와 평안한 미소가 없습니다.
그저 무거운 고요가 감돌고 있을뿐입니다.
직접 본 분은 아시겠지만, 파리의 로댕 박물관 뜰에있는 '생각하는 사람'은
무거운 고요 속에 굳어 있습니다.
'미륵 반가사유상'에는 어디에도 거리낌없는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는데.
'생각하는 사람'에는 이 무애의 미가 결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앞에서는 그저 무겁고 답답하기만 할 뿐입니다.
철학자 아스퍼스가 " 미륵 반가사유상 " 을 보고 그토록 격찬한 이유를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 사물의 아름다움이 거리낌이 없을 때 우리는 감동을 받습니다.
물론 그 작가의 혼이 그렇게 작용을 한 것입니다.
동양과 서양의 사유상(思惟像)을 통해서도 우리는 동서 문화의 차이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걸림이 없는 무애의 시를 한 편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대 그림자 뜰을 쓸어도 먼지 일지 않고
달이 연못에 들어도 물에는 흔적 없네."
<금강경오가해>에 나오는 야보선사의 송(頌)입니다.
바람이 불어 대나무가 일렁거려서 마치 뜰을 쓰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먼지 하나 일지 않습니다.
또 밤에 달이 연못 속에 들어가도 물에는 아무 흔적이 없습니다.
뛰어난 장인은 자취를 남기지 않습니다.
자기가 만든 작품으로 부터 자유로워진 것입니다.
그러나 명인이든 도인이든 생각을 가지고 작품을 만들면 흔적이 남습니다.
만들 때의 그 사람의 마음이 그 작품에 그대로 드러납니다.
전시회에 가서 그림이든 조각작품이든 도자기이든 아무 고정관념 없이
그 작가에 대히 아무 선입견 없이 빈 마음으로 보면
그 작품을 만든 사람의인품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샘물과 같아서 아무리 퍼내도 다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가꾸지 않으면 솟아나지 않습니다.
어떤 대상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만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안으로 느낄 수 있으면 됩니다.
그러나 나 자신이 지닌 아름다움은 가꾸지 않으면 솟아나지 않습니다.
내 안의 샘에서 아름다움이 솟아나도록 해야 합니다.
남과 나누는 일을 통해 나 자신을 수시로 가꾸어야 합니다.
우리가 참선하고 염불하고 경전을 읽는 것은 자신을 가꾸는 추상적인 일입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나눔의 삶을 살아갈 때 내 안에 들어 있는 자비심이 샘솟듯 생겨납니다.
아름다움은 시들지 않는 영원한 기쁨입니다.
이 가을에 무엇인가 새롭게 시작하시길 권합니다.
그날이 그날인 것처럼 지내지 마십시오.
이 가을은 다시 만날 수 없는 일기일회. 생애 단 한번뿐인 가을입니다.
누구도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것이 이 삶입니다.
이 가을날. 그저 대상만 보고 즐길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도 샘솟는 아름다움이 있어야 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그 아름다움은 남과 나누는 데서 움이 틉니다.
이 가을에 다들 아름다움을 만나고 가꾸면서 행복해지시기 바랍니다.
--------------------------------------------------------------------------------------
이 글은 2007년 10월 21일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열린 법정스님의 '2007년 가을정기법문'에서
옮겨 온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