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도 마음도 닮은꼴, 父子 신장 기증
뉴시스 | 배민욱 | 입력 2010.05.08 06:01
【서울=뉴시스】배민욱 기자 = "좋은 일을 아무리 많이 하고 바로 살려고 노력해도 아버지를 따라가긴 힘들더라고요."
노성철씨(44)는 아버지인 노명환씨(74)를 보며 말했다. 두 사람은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드문 부자 신장 기증인이다. 아들 노성철씨와 아버지 노명환씨는 각각 1995년 6월과 8월에 신장을 기증했다.
먼저 신장을 기증한 노성철씨도 장기기증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이 있었지만 적극적인 활동을 펼친 쪽은 아버지였다.
노명환씨는 1992년 한 일간지에 한 의대 교수가 제자들을 위해 시신을 기증했다는 기사를 보고 감명을 받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시신기증을 약속했다. 이후 주변에 시신 및 각막과 뇌사 시 장기기증을 권했고 온 가족이 장기기증등록을 하기에 이르렀다. 자유 기고를 통해 장기기증을 알리기도 했다.
"장기기증 운동은 내가 먼저 했는데 살아있을 때 장기기증이 가능하다는 건 아들을 통해 알았습니다."
노성철씨는 장기기증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였다. 언젠가 신장을 기증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가 결심을 굳히고 아버지께 기증의사를 밝혔다. 노명환씨는 흔쾌히 허락했다.
"걱정이 되지 않았던 건 아니죠. 아직 장가도 안 간 몸인 데다 대수술인데. 그렇지만 참 대견하더군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 내가 잘 키워서 그런가. 허허."
1995년 6월8일 노성철씨는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를 통해 한양대학교 병원에서 신장을 기증했다. 노명환씨는 아들의 신장 기증 과정을 주의 깊게 살폈다. 아들의 건강을 염려한 까닭도 있었지만 자신의 신장 기증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었다. 노명환씨가 신장 기증 의사를 밝히자 노성철씨는 염려스러웠다.
"연세도 있으시고. 제가 먼저 기증을 해보니 아프기도 해서 걱정이 됐어요. 하지만 아버지가 하시겠다고 하면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없거든요."
노명환씨는 아들이 신장을 기증한 지 두 달만인 8월21일 같은 병원에서 신장을 기증했다. 그는 마침 조직형이 잘 맞는 환우가 있어 신장을 기증할 수 있었다며 마치 이식받은 사람처럼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이처럼 대수술을 하면서까지 부자가 동시에 장기기증을 했던 까닭은 생각하는 기독교 정신 때문이었다. 특히 노성철씨는 신장 기증에 대한 배경으로 아버지의 가정교육을 꼽았다.
"무엇을 실천할지에 관해서 조목조목 말씀하시곤 했지만 잔소리처럼 들리지 않았던 건 아버지가 먼저 몸소 실천하셨기 때문입니다."
노성철씨는 아버지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두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현재는 노명환씨가 은퇴하고 노성철씨가 6명의 가족을 부양하며 가장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노명환씨는 학습지 영업을 하며 주말에도 일을 나가는 아들을 볼 때면 내심 신장기증이나 취미생활을 함께했던 옛날이 그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고 한다. 그러나 함께 신장을 기증했던 어렸던 아들이 어느덧 15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 자신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는 모습을 볼 때면 흐뭇한 마음이 든다고 한다.
"어려운 시절에도 더 힘든 이들과 나누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시고 그 마음을 물려주셔서 감사하다"고 노성철씨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mkbae@newsis.com
노성철씨(44)는 아버지인 노명환씨(74)를 보며 말했다. 두 사람은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드문 부자 신장 기증인이다. 아들 노성철씨와 아버지 노명환씨는 각각 1995년 6월과 8월에 신장을 기증했다.
먼저 신장을 기증한 노성철씨도 장기기증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이 있었지만 적극적인 활동을 펼친 쪽은 아버지였다.
"장기기증 운동은 내가 먼저 했는데 살아있을 때 장기기증이 가능하다는 건 아들을 통해 알았습니다."
노성철씨는 장기기증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였다. 언젠가 신장을 기증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가 결심을 굳히고 아버지께 기증의사를 밝혔다. 노명환씨는 흔쾌히 허락했다.
"걱정이 되지 않았던 건 아니죠. 아직 장가도 안 간 몸인 데다 대수술인데. 그렇지만 참 대견하더군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 내가 잘 키워서 그런가. 허허."
1995년 6월8일 노성철씨는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를 통해 한양대학교 병원에서 신장을 기증했다. 노명환씨는 아들의 신장 기증 과정을 주의 깊게 살폈다. 아들의 건강을 염려한 까닭도 있었지만 자신의 신장 기증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었다. 노명환씨가 신장 기증 의사를 밝히자 노성철씨는 염려스러웠다.
"연세도 있으시고. 제가 먼저 기증을 해보니 아프기도 해서 걱정이 됐어요. 하지만 아버지가 하시겠다고 하면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없거든요."
노명환씨는 아들이 신장을 기증한 지 두 달만인 8월21일 같은 병원에서 신장을 기증했다. 그는 마침 조직형이 잘 맞는 환우가 있어 신장을 기증할 수 있었다며 마치 이식받은 사람처럼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이처럼 대수술을 하면서까지 부자가 동시에 장기기증을 했던 까닭은 생각하는 기독교 정신 때문이었다. 특히 노성철씨는 신장 기증에 대한 배경으로 아버지의 가정교육을 꼽았다.
"무엇을 실천할지에 관해서 조목조목 말씀하시곤 했지만 잔소리처럼 들리지 않았던 건 아버지가 먼저 몸소 실천하셨기 때문입니다."
노성철씨는 아버지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두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현재는 노명환씨가 은퇴하고 노성철씨가 6명의 가족을 부양하며 가장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노명환씨는 학습지 영업을 하며 주말에도 일을 나가는 아들을 볼 때면 내심 신장기증이나 취미생활을 함께했던 옛날이 그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고 한다. 그러나 함께 신장을 기증했던 어렸던 아들이 어느덧 15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 자신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는 모습을 볼 때면 흐뭇한 마음이 든다고 한다.
"어려운 시절에도 더 힘든 이들과 나누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시고 그 마음을 물려주셔서 감사하다"고 노성철씨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mkba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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