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향기/大德스님 법문

원로의원 동춘스님

法光 2009. 10. 4. 02:05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지혜롭게 살도록 하라 멋진 인생이 될 것이다”

지난 19일 동춘스님의 토굴은 말 그대로 토굴이었다. 누런 황토 흙벽에 마당은 이제 막 흙을 깐 듯 물기가 완전히 빠져나가지 않았다. TV, 한 명이 간신히 누울 수 있는 잠자리, 몇 권의 책을 넣은 박스, 그리고 작은 옷장이 전부인 ‘침실’과 그보다 훨씬 작은 부엌, 이제 막 시멘트 공사가 끝난 기도처가 이 토굴의 전부다.
 
“번뇌의 원인인
탐.진.치 삼독심은
모두 화에서 비롯되는 것
 
화를 내는 것은
‘남이 못해서’
‘내말을 듣지 않아서’
‘남이 못나서’ 등등
남 탓을 하기 때문이다.
 
화를 내면
건강을 해치고
가정을 해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의 허물을 먼저 생각해라.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가.
저 사람이 잘못한 것은
나에게 책임이 없는가.
그리고 늘 좋은 생각을 해라”
 
  토굴생활을 하는 스님은 늘 혼자 조용히 공부한다. 하지만 대중 책임을 맡으면 납자들의 공부를 위해 최선의 지원을 하고 퇴락한 가람을 일으키는데도 발군의 원력을 보여준다.<사진설명> 토굴생활을 하는 스님은 늘 혼자 조용히 공부한다. 하지만 대중 책임을 맡으면 납자들의 공부를 위해 최선의 지원을 하고 퇴락한 가람을 일으키는데도 발군의 원력을 보여주었다.
 
토굴생활을 하는 스님들은 불청객을 제일 싫어한다. 불쑥 찾아오는 사람들을 하나 둘 맞이하다 보면 토굴 생활은 엉망이 되고 만다. 특히 기자는 기피 1호다. 이들은 혼자 조용히 왔다 가는 다른 손님들과 달리 나중에 엄청난 수의 불청객들을 대동한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홀로 조용히 거처를 마련하고 살아가는 수행자의 토굴이 여기 있노라 소리치는 기자는 산짐승의 보금자리를 들추는 포수와 다름없다.
 
전화선 너머로 들려오는 노기 띤 목소리에서 이미 짐작은 했지만 실제 맞닥뜨린 상황은 더 심각했다. “할말도 없고 여기 있는 것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으니 서둘러 가라”는 말에 “불쑥 찾아와서 죄송하다”는 말만 되뇌어야 했다. “어서 가라”던 스님이 일어나서 “과일이라도 하나 들고 가라”로 바뀌었다. 적어도 당장 쫓겨나는 것만은 면했으니 천만 다행이다. 과일을 깎고, 먹는 시간은 벌었다.
천천히 과일을 깎으면서 이야기는 시작됐다. 물론 신문에 싣지 않는다는 조건이 붙었다. 주로 토굴생활에 관한 것이었다.
 
스님은 2개월 전 이곳으로 왔다. 주지 스님의 배려가 있었다. 여든이 다 되어가는 노(老) 스님에게 직접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토굴 생활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스님은 하지만 “오히려 편하다고 했다. 나이 들어 젊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도 옳지 않다”고 했다. 큰 절 주지스님이 밥만이라도 와서 드시라는 청을 드렸지만 사양했다고 한다.
 
스님의 토굴 생활은 오래됐다. 출가하기 전 청년시절부터 혼자 토굴에서 즐겨 수행했다고 한다. 전국 안다녀 본데가 없다. 나뭇가지를 얽고 비닐 하나로 비만 간신히 가린 ‘진짜 토굴’에서도 많이 살았다. 지금처럼 집다운 집을 짓고 사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 해도 혼자 사는 공간 이상 넓게 짓지 않았다. 늘 옮겨다는 생활을 하다 보니 ‘갖지 않는 것’은 기본이다. 토굴 수행자에게 소유는 짐이다. 가진 것이 있으면 누가 가져갈지 신경써야하고 옮겨 다니기도 힘들다. 부처님도 ‘깨달은 분’이 된 후 평생을 옮겨 다녔다. 길을 가다 나무 밑이나 무덤가 자연 동굴에서 잠을 잤다. 부처님처럼 제자들도 이동은 숙명이며 의무다. 누더기 옷과 발우 하나면 족하다. 지금의 동춘스님이 그렇다.
하지만 수행자라고 해서 누구나 토굴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스님은 “혼자 있으면 망상이 더 생긴다. 혼자 앉아서 만리장성을 쌓는다. 대중과 어울려 살 때 오히려 잡념이 없다”고 말했다. 성철스님도 말했다. “큰 방 생활하는 중이 제일”이라고. 스스로를 컨트롤 할 수 있을 때 까지는 대중 속에서 규칙을 배워야한다. 남을 위해 양보하고 하심(下心)하는 것만으로도 큰 수행이다. 기본이 안 된 상태에서 자유만 즐기다 보면 아집만 늘고 대중과 화합을 못하게 된다. 어느 하나가 옳은 것이 아니라 모두 그 나름의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높은 경지에 이르러 규칙이 필요치 않은 사람을 틀 속에 가둬놓는 것 또한 잘못이다. 옳다고 해서 모두에게, 그리고 늘 옳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 동춘스님은 말했다. “행위를 놓고 평가하지 말라” “행위 자체는 틀린 것이 없다. 모두 나름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문제는 의도다. 선한 생각을 갖고 하는 것이냐 악한 의도를 지녔느냐를 잘 지켜보아야한다. 사기꾼도 불우이웃을 돕고 착한 일을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 행위가 옳은 것은 아니다. 그는 나쁜 일을 하기위해 눈속임으로 착한 일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속마음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스님은 “평소에 잘 관찰하고 주의 깊게 보며 자주 말을 나눠야한다”고 했다. 사람과 사물에 대해 평소에 애정을 갖고 대하라는 뜻이다. 자신이 직접 확인하지 않고 판단하는 것이나 의견을 사실인양 말하거나, 남의 말을 자신의 말인 양 가장 하는 것도 삼가야할 태도라고 지적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과 사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남의 말과 나의 말을 혼동해서 사용한다. 그렇게 해서 거짓이 횡행하고 친한 사람이 분열하고 진실이 외면당한다.
 
과일을 다 먹어가자 스님이 말을 건넸다. “난 부산에서 온줄 알았는데 멀리 서울서 왔으니 기자님 궁금한 것 하나 답해주겠다” 기자는 “세속에서 살다보면 화를 낼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사람은 왜 화를 내며 이를 가라앉히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스님은 질문이 아주 흡족한 듯 했다. “아주 좋은 질문이다. 번뇌의 원인인 탐ㆍ진ㆍ치 삼독심은 사실은 모두 화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화를 내는 것은 남 탓을 하기 때문이다. ‘남이 못해서’ ‘내말을 듣지 않아서’ ‘남이 못나서’ 등등의 핑계를 대며 탓을 하다보니 화를 내게 되는 것이다. 화를 내면 건강을 해치고 가정을 해친다. 이는 마치 우물에 돌을 던져 물을 마르게 하는 것과 같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의 허물을 먼저 생각해라.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가. 저 사람이 잘못한 것은 나에게 책임이 없는가. 그리고 늘 좋은 생각을 해라. 그러면 마음이 가라앉을 것이다”
 
이번엔 스님이 질문을 하나 하겠다고 했다. “기자니까 잘 알 수 있을 것”이라며. ‘그것은 스님의 편견’이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우물이 있는데 퍼내면 다시 솟아나 제자리를 채우고, 채워도 물이 빠져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데 이 우물물을 많이 채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엉뚱한 답을 하자 “기자가 그것도 모르냐”며 핀잔을 주었다. 스님이 답했다 “우물을 깊게 파면 된다”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고 지혜롭게 살도록 하라. 그러면 멋진 인생이 될 것이다”
그냥 여기 까지 왔으니 도움 될 말 하나 해주시겠다던 스님 입에서 “이 말 하나는 써도 괜찮다”는데 까지 나아갔다. 그러나 결국 사진은 찍지 못하고 대신 토굴 사진촬영만 허락 받았다. 기자도 조용히 토굴 생활하는 스님을 위해 장소를 밝히지 않기로 했다. 경주라는 것만 귀띔한다.
 
경주=박부영 기자 chisan@ibulgyo.com
 
동춘스님은 …
각화사 수행도량으로 복원
약값 법사비 등 보시금 모아
어린이도서 60여만부 배포
 
19세 되던 해인 1956년 부산 선암사에서 석암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스님은 1970년 범어사에서 석암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받고 전국의 선원에서 수행정진했다. 출가 후 부모와의 인연으로 갈등하다 ‘부모은중경’을 보고 진리로 이끄는 것이 부모에 대한 진정한 효임을 깨닫고 출가의 의지를 굳혔다. 또 이를 통해 금강석 같은 정진력을 갖게 됐다. 봉암사 선암사 각화사 등의 주지 소임을 맡아 불사를 훌륭하게 일궈냈다. 특히 각화사를 수행도량으로 복원시킨 공로가 크다. 투명한 재정운영과 수행납자들을 위한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아 여러 스님들로부터 존경과 신망을 받았다.
 
2000년 청소년 포교의 어려움을 접하고 그동안 신도들이 약값이나 교통비 법문비 등으로 준 것을 모아 ‘부처님이 들려주는 효이야기 ’25만부를 발행해 전국 6000여 초등학교와 사찰 등에 무료 배포했다. 2003년에는 ‘밤톨이와 얼짱이의 효도 뚝딱’ 20만부를, 2004년에는 ‘엄마 아빠 고마워요’ 15만부를 발행해 무료 배포했다. 가산불교문화연구원이 추진하던 ‘불교대사림’ 편찬사업에도 3000만원을 기탁해 지난해 포교대상을 수상했다. 현재 조계종 원로의원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