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우리 아무것도 없이 태어나”
나는 신심이 깊은 78세의 노보살을 알고 있다. 그분은 40대 시절에 관응 큰스님의 인과 법문을 듣고, 가죽 옷을 모두 없애 버렸다. 귀금속도 버렸다. 3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 밍크코트를 비롯한 일체의 가죽제품을 쓰지 않고 어떤 귀금속도 착용하지 않는다.
마침내 자신이 살던 집을 부처님 모시는 법당으로 만들었다. 그는 “내생에 남자로 태어나 동진출가해서 불도를 닦게 해 주세요”라는 원을 세우고,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한다.
그는 나에게 기도할 때의 염불 의식을 알려달라고 했다. 나는 그가 독경이나 발원의 내용을 알 수 있도록, 〈천수경〉 〈반야심경〉, 나옹화상 발원문을 한글로 번역해서 주었다.
5년이 넘게 열심히 기도해온 그가, 작년의 어느 날, 천도재를 끝낸 나에게 물었다. “스님 극락세계가 어디에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지요? 방편으로 위패를 모시고 재를 올리는 것이지요?” 나는 깜짝 놀라서 왜 그런 말을 하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반야심경에 모든 것이 없다고 하는데, 저승이나 내생이나 극락이 어디 있겠어요?”라는 반문만 들어야 했다. 나는 〈반야심경〉이나 〈금강경〉에서의 “무(無)”자가 무조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잘못된 고정적 실체에 대한 집착을 지우기 위해서, 또 물질은 물론 정신까지도 영원불변하지 않음을 알리기 위해서, 심지어는 무집착을 깨우치는 부처님의 가르침까지도 강을 건너기 위한 뗏목에 불과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 상징적으로 ‘무’자를 쓸 뿐이라고 말해 주었다.
내가 정색을 하고 진지하게 설명을 해서인지, 그는 완전히 납득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잘 알겠습니다”라는 말로 대화를 마치려 했다. 그렇지만, 그 후에도 여러 번, 〈반야심경〉이나 〈금강경〉의 ‘무’자가 부처님의 속마음을 전하는 것이고, 소원성취나 극락세계는 방편이 아니겠느냐는 말을 반복하곤 했다.
“보고 듣고 만지는 것 모두 소득 아닌것 없어”
앞의 불자만 ‘무’자에 걸리는 것이 아니다. 수십 년에 걸쳐 나의 교리강좌나 경전해설을 들어온 불자들이, 명절이나 특별한 날에 나에게 인사하는 내용을 들어 보면, 사람들의 관심은 ‘소득’임을 알 수 있다. 그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려 주셔서 저희가 미혹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스님,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스님 덕분에 저희 집안이 큰 장애 없이 편안하게 잘 지낼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한다.
나는 ‘無(무)의 得(득)’이라고 쓴, 보자기를 신도들에게 선사하면서, 어떻게 풀이하느냐고 물었다. 많은 신도들이 “욕심과 번뇌 망상을 지우면 얻을 바 즉 소원성취가 있다”로 해석했다. 신도들은 지금 이미 누리고 있는 것 외에, 더 발전된 것, 더 좋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풀이한 것이다.
나는 속으로 ‘본래 우리가 무엇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즉 본래 무일물이기 때문에, 우리가 보는 것, 듣는 것, 만지는 것, 어느 것 하나 소득 아닌 것이 없다’라는 해석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니 ‘지우면 소득이 있다’거나, ‘본래 무이므로 이미 모두가 소득이다’라는 말 어느 쪽도 다 좋은 것 같다.
〈반야심경〉을 자세히 보라. 무자를 몽땅 써 놓고는 “그러므로 삼세제불이 최고의 깨달음을 얻는다”라고 한다. 우리는 아무 비용도 들이지 않고, 지금 여기에서 누리고 있다. 아무 자본 없이 얻은 이 이상의 소득이 어디에 있는가. 아무리 잃어도 우리는 잃을 것이 없다. 일체가 소득이거니와 설사 실패하고 잃더라도 그마저 소득이다.
소득의 문제 때문에, 〈법화경〉은 우리가 본래부터 부처님의 모든 재산을 물려받을 상속자로서, 소득으로 충만해 있다고 한다. ‘신해품’ ‘부자 아버지와 거지 아들’의 비유에서, 어릴 때 아버지를 잃어버린 아들이, 재산가 아버지를 만나서 알아보지 못하지만, 차츰 상속자임을 깨닫게 된다. 천태에서는 이를 ‘성구(性具)’ 즉 ‘본성 가운데 본래부터 모든 가능성을 갖추어 있음’으로 풀이한다. 무를 뒤집어서 표현한 것이다. 무소득이야 말로 진짜 소득을 알려 주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속리산 허허선당 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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