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향기/大德스님 법문

불교는 우상 숭배가 아닙니다.

法光 2009. 10. 4. 08:51

불상에 절하는 것은 불상 그 자체를 예경하는 게 아니라 부처님의 덕성에 예경하는 것
 불상은 중생들로 하여금 부처님의 덕성을 떠올려 신심을 돈독케 해주는 훌륭한 방편

 

 * 불상에 절을 하는 것은 우상숭배가 아닙니까?
 * 당신은 조상묘에 성묘를 할 때에 흙에게 인사를 합니까? 잔디에게 인사를 합니까?
 * 조상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조상님께 인사를 합니다.
 * 우리도 부처님의 은덕을 생각하며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는 것이지, 나무토막에게 인사를 드리는 게 아니라오.

 

    불상에 절하는 것은 부처님을 공경하고 내가 닮아갈 수 있게 마음을 내는 행위

    내 사진을 누가 밟거나 훼손하면 기분 나쁘다 - 사진이 진짜 '나'는 아니지만, 그렇다고해서 '나'가 아닌 것도 아님
    태극기 자체에 생명력이 있는 건 아니지만 태극기를 보면서 나라를 생각케 해주는 좋은 매개체가 되듯이
    마찬가지로 불상이 진짜 부처님은 아니지만 진짜 부처님을 떠올리게 해주는 훌륭한 매개체가 됨

 

    불상에 절 하는 것은, 보이는 형상에 절을 한다기 보다는 형상이 대변하는 덕성(지혜,자비)에 하는 것

   '우상숭배'라는 것이, 어떤 신상에 기도하고 요구하고 갈구하면서 들어줄 것을 믿는 것이라면
    진짜 우상숭배는 '나'아닌 밖의 것에 의존하여 밖에서 찾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런데 불교의 근본 가르침은 불상 그 자체가 소원을 들어준다는 것이 아님
    중요한 것은 불상 자체가 아니라 그 불상을 매개체로 하는 부처님의 가르침과 불자의 신심(信心)을

    통한 마음의 변화


        경전에서도 형상으로 된 부처는 진짜 부처가 아니라고 경고하고 있음

 

       금 강 경
   '만약 모양으로 여래를 보려하거나 음성으로 찾는다면, 그 사람은 그릇된 길을 가게 되므로 능히 여래를 볼 수 없다.'
    若以色見我(약이색견아) 以音聲求我(이음성구아) 是人行邪道(시인행사도) 不能見如來(불능견여래)

 

   '쇠부처는 용광로에 녹아버리고, 나무부처는 불에 타버리고, 흙부처는 물에 녹아버리지만, 참부처는

    내마음에 있도다.  
   (金佛은 不度爐하고, 木佛은 不度火하고, 泥佛은 不度水이어니와, 眞佛은 內裏座시니라.) <야보스님 게송>


      불교에서 설하는 참된 부처는 곧 마음이요 '지혜작용'이라고 분명히 설하고 있음

 

     육조단경
  '네 가지 큰 서원을 발한 이는 불·법·승의 자성 삼보(自性三寶)에 귀의하여라.
   불(佛)이란 깨달음이고, 법(法)이란 마음이 올바름이며, 승(僧)이란 마음이 청정함이다.

   만약 부처에게 귀의한다 하면 그 부처는 어디에 있는가?
   부처를 보지 못한다면 무엇을 의지해 돌아갈 것인가?
   그러니 귀의한다는 말이 우습지 아니한가?

   그러므로 자신의 부처에게 돌아가지 않으면 의지할 곳이 없다.
   이제 스스로 깨달았다면 저마다 제 마음의 삼보에 귀의하여라.'

 

  '부처의 행(行)이 곧 부처이니라." (佛行是佛 불행시불)
  (부처다운 말과 행동 즉 부처의 지혜작용이 곧 부처이지, 고정된 형상으로서 부처가 있는 것은 아님)

 

     부처님께서도 오직 진리에 의지하라 하셨음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 자신에게 의지하라. 진리에 의지하고, 진리를 스승으로 삼아라.
   진리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리라. 이 밖에 다른 것에 의지 해서는 안된다."
  (자등명 법등명 自燈明 法燈明)

 

     이런 불교를 어찌 우상숭배의 종교라 하겠습니까?